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티마 왕조 (문단 편집) === 쇠퇴 === 하지만 파티마 왕조는 내부의 반대파와 동로마 제국, 그리고 [[중앙아시아]]로부터 서진하는 [[셀주크 제국]]에게 연이어 패배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대외적 어려움에 영향을 받은 파티마 왕조 내부도 당연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군대의 세력은 갈수록 커져갔고 베르베르인, 튀르크인, 수단인, 누비아인 부대 간에 내란이 일어났다. 이러한 군대 내 세력 간의 불화는 1020년대에 들어와 본격화되었다. 이후 이집트는 분파 간의 싸움으로 무정부와 폭정의 악순환에 빠졌으며, 기근과 전염병이 계속되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1048년에 북아프리카의 [[지리 왕조]]가 파티마 왕조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여[* 이집트를 점령하고 중심지를 옮긴 969년에서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972년에 세워졌다. 즉 단일 정권이 동•서로 긴 북아프리카의 해안을 한꺼번에 통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왕조의 발상지를 뺏겼고, 동쪽과 서쪽 지역은 새로 나타난 침략자들에게 빼앗겼다. 1060년까지 이집트는 계속된 가뭄으로 쇠퇴하기 시작했고, 자원의 감소로 인한 파티마 왕조 내부의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1090년대 파티마 왕조는 유럽 십자군의 대규모 침공으로 레반트와 시리아를 상실했고, 아라비아 반도에서의 지배력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11세기 말에 이르면 파티마 왕조의 영역은 이집트만이 남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